84일차_견리망의見利忘義

미디어에 ‘올해의 OO’시리즈 기사가 올라오는 걸 보면 한 해가 다 갔음을 느낀다. ‘올해도 벌써 다 갔구나!’ 내 입에서 미끄러지는 이 한 마디에 다양한 감정의 색채가 중첩돼있다. 연말결산 하느라 바쁜 사람들 속에 멍하니 서서 머릿속이 암전된 듯한 순간은 또 어김없이 오고야 말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물을 머금은 하늘은 온종일 낮게 드리운 채 말이 없다. 그 무슨 슬픔 안았기에 그토록 침울했을까… 오늘 하루 그 기운 내려받은 이들의 가슴은 키 작은 하늘만큼이나 우울했으리라. 오늘 같은 날엔 그냥 무작정 걷고도 싶고, 걷다가 지치면 이름 모를 찻집에 들러 유리창이 넓은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이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도 싶다. 그러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여인이 되어 그 빗줄기 벗 삼아 커피 한 잔에 모든 시름 녹이고 싶어지리라.

비 때문인가? 오늘 기분이 왜 이럴까나. 하하. 마음 추스르고 고사성어나 공부합세. 음… 오늘의 성어는 뭘로 할까? 올해의 사자성어? 굿 초이스!

대학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았다네. 두둥~ 뭘까요? 1위가 ‘견리망의(見利忘義)’란다.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구먼. 교수신문은 지난 10일 전국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견리망의’가 30.1%(396표)의 지지를 얻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고 밝혔다. 기사에서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다 보니 사회적 대의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교수들의 목소리도 함께 담겼더라. 그런 우려 속에서 선택된 ‘견리망의(見利忘義)’의 한자구성부터 한 번 보자.

볼 견(見), 이로울 리(利), 잊을 망(忘), 의로울 의(義)


‘견리(見利)’는 ‘이로움을 보다’요, ‘망의(忘義)’는 ‘의로움을 잊다’가 되겠다. 그러니 이 둘을 합체하면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잊다’가 되는 거다. 이 말은 <논어(論語)>의 ‘헌문(憲問)’ 편에 나오는 ‘견리사의(見利思義)’에서 유래했단다. 그럼, 공자님이 뭐라 하셨을꼬?

공자가 다시 말씀하셨다. “오늘날 성인(成人)이라는 것이 어찌 반드시 그런 정도의 인물이어야겠는가? 견리사의(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고(見利思義),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이 또한 성인(成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문장은 제자 자로(子路)가 ‘완성된 인간(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한 것이다. 이처럼 공자님이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전인적 인간(成人)이라고 한 말에서 ‘견리망의(見利忘義)’가 나온 거란다. 자로(子路)가 질문한 ‘전인적 인간(成人)’에 대한 정약용의 해석은 이렇더라. ‘완성된 인간(成人)이란 반드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바탕으로 한 뒤에야 예악(禮樂)으로 문채(文)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잘은 모르겠으나 여기서 완성(成)의 의미는 ‘음악(樂)’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논어(論語)>의 다른 곳에서 ‘음악에서 이룬다(成於樂)’와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하니. 이게 아니더라도 공자가 예악(禮樂)을  중시한 것은 너무도 유명하니까. 

언제부턴가 정치뉴스를 일부러 멀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이들이 정치랍시고 하고 있는 행태를 보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유불리의 관점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씁쓸하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도 원칙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우리가 투표해서 뽑아놓은 대표자들의 권력행사를 무기력하게 관조할 수밖에 없다. 일정 기간 우리 자신의 권력을 그들에게 모두 양도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허구성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우리를 훈육시키는 권력의 힘에 맞서 삶의 권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