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兎死狗烹)’은 우리 한국인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고사성어 중의 하나일 게다. 그 뜻으로 봐선 사랑받지 않아야 마땅하리만, 아니 이 말을 쓸 상황이 아예 생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게 참 아이러니란 말이지. 대체 먼 뜻이길래 그러냐고? 음… ‘배신당하다’의 고사성어 버전이지 뭐~
이 성어는 중국 한(漢)나라의 명장 한신(韓信)이 유방(劉邦)을 원망하며 했던 말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고대역사소설 중 <삼국지(三國志)> 다음으로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면 <초한지(楚漢志)> 정도 되려나? 진(秦)나라 이후 혼란스러웠던 난세에 걸출한 두 영웅을 배출했던 초한전쟁.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벌인, 고대 중국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그 5년간의 전쟁 이야기 속에는 저 두 영웅 말고도 불세출의 인물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한신(韓信)이렷다.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병력이 초나라 병영을 포위했을 때, 그가 부하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던 고사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성어가 나오지 않았겠나. 사방(四面)에서 한나라 병사들이 부르는 초나라 노래(楚歌)가 들리니 초나라 군사들의 사기가 어찌 됐겠나. 이렇게 ‘고향 생각’을 무기로 적의 사기를 무너뜨렸고,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 바로 한신이었다. 과연 <삼국지>의 유비에게 제갈량이 있었다면, <초한지>의 유방에게는 한신이 있었나니.
한신은 이처럼 유방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데 있어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니 유방도 그 공을 높이 사서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임명하지 않았겠나. 이걸로 한신은 해피엔딩이었을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항우’라는 강적이 사라진 유방에게 남은 적은 누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날로 명성과 힘이 커지는 한신은 유방에게는 이제 눈에 가시였을 게다. 그러던 어느 날, 항우의 부하이자 한신의 친구이기도 한 종리 말(鍾離 眜, 흔히 ‘종리매’라고 불리지~)이 찾아와 그에게 의탁하게 된다. 당시는 항우 잔당들은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유방의 체포 명령이 내려졌던 터라 한신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결국 주변의 설득에 넘어간 한신이 솔직하게 그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종리 말이 화를 내며 그러더란다.
‘유방이 초나라를 치지 못함은 너와 내가 함께여서라는 걸 모르느냐. 그런데도 유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날 버리겠느냐. 그럼 좋다. 내가 죽어주마.’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아닌가. 결국 한신은 종리 말의 수급을 들고 유방에게 바쳤으니. 이것으로 진짜 해피엔딩? 노(No)!! 이게 먼 일? 유방은 종리 말의 목은 목대로 접수! 한신 넌? 옳거니 너도 함께 가라. 그렇게 한신을 포박하고는 모반의 진상을 조사한 뒤 혐의가 없자 한신을 초왕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강등시켜버린다.
오~ 배신자여!!
한신은 유방을 원망하며 이렇게 한탄했다고 하지.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구나.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춰버리며, 적국을 멸망시키고 나면 함께 도모했던 신하도 망한다더니.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이제 ‘팽’ 당하는구나(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보인다. 이 일화로부터 ‘토사구팽(兎死狗烹)’, 즉 ‘토끼 토(兎), 죽을 사(死), 개 구(狗), 삶을 팽(烹)’의 사자성어가 나왔다. ‘토사(兎死)’는 ‘토끼가 죽다(‘토끼를 잡는다’는 뜻이겠지)’요, ‘구팽(狗烹)’은 ‘개를 삶는다(‘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이겠고)’는 의미거늘. 여기서 유래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처럼, 필요할 때는 잘만 쓰다가 필요 없어지면 냉정하게 버려버리는 상황에서 쓰이게 되었다.
이 얼마나 비정한가 말이다. 한신이 ‘사면초가’ 전략으로 항우의 자살을 이끌어내고 천하통일이 눈앞에 왔을 때, 그게 어쩌면 그가 누릴 영광의 끝이었을지도. 과거로부터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권력의 세계에서 최고 권력자와 2인자 간의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참 슬프지만 그게 인간인 걸 어쩌겠나.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인간이란 배신하는 존재다. 그래서 평소에 서로 잘해야 한다’는 이 문장을.
인간에 대해 경악하게 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그렇다보니 이젠 먼 일이 일어나도 안 이상하긴 하다(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뭐든 일어날 수 있는 세상에서 갈수록 무감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게 더 슬프다. 우리를 자주 실망시키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는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이 성어가 정말 쓸 일이 없는 그런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 실없는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게 되는 금요일 밤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토사구팽에 대해서 자세히 알았습니다. 인간의 약함이 악으로 변하는 성어인듯하기도 합니다. 약함이 약함에서 끝나면 좋은데 그것이 악의 모습으로 변할때.. 참 씁쓸합니다.
그니까요. 인간은 배신하는 존재라니.. 아주 대놓고 말하니 왠지 더 슬퍼진다는 ㅠ
저는 토사구팽 가끔 당했어요. 커피 하면서 토사구팽 잘 당해요. 어려울 때 도움 받고 뽑을 것 다 뽑으면 팽 당하거든요..
ㅠㅠ 그니까요. 살다가 그런 느낌 받을 때 너무 슬프죠. ㅠ
우리가 일상언어로 사용하는 ‘팽’당한다 ‘팽’당했다의 ‘팽’이 토사구팽의 팽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그 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