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가 고사성어다 보니 내 눈에 유난히 더 잘 띈 것이리라. 알고 보니 마약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지드래곤이 검찰조사를 받고 SNS에 올렸다고 해서 화제가 된 거더라. 기자들은 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사전적 정의까지 친절하게 ‘복붙’해가며 기사를 만들어내던 중이더구먼. 여기도 저기도 다 ‘사필귀정(事必歸正)’… 하하. 정말 이게 ‘머선 일이고?’ 했다는.
자, 그럼… 지드래곤 덕분에 매스컴도 많이 탔겠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사필귀정을 한자와 함께 눈에 담아보면 좋으리라.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의 이 성어는 바로 요런 한자들의 조합이렷다.
일 사(事), 반드시 필(必), 돌아갈 귀(歸), 바를 정(正)
‘사필(事必)’, 이 말은 ‘일은 반드시’란 뜻이다. 그게 어쩐다고? ‘귀정(歸正)’ 즉 ‘바름으로 돌아간다’는 거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처음엔 그 사건의 진실과 다르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제대로 바로잡아짐을 의미한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정의가 이긴다’는 말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사필귀정이 되시겠다.
늘 그렇듯이 오늘의 성어에 관한 고사를 찾아 중국 사이트를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출전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더라. 중국 검색사이트에는 온통 ‘사필귀정’을 언급한 지드래곤이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사진뿐이니 원… 이 성어가 중국에 없는 건 아니나 그 사용 빈도를 보면 한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표현인 건 분명한 듯하다.
나에게 ‘사필귀정’은 좀 무서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표현 자체에 위압감이 서려 있달까? 뭔지 모르지만 발음부터 되게 사나운 느낌?(희영샘의 영향?) 이 말이 더 직접적으로는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게 되어있다’로도 해석이 가능해서일까? 하하.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근데, 난 죄진 것도 없는데 왜 무서울까나.
여튼,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이런 의미와 비슷한 맥락에서 쓸 수 있는 표현으로는 인과응보(因果應報), 권선징악(勸善懲惡) 같은 성어도 떠올릴 수 있겠다.
어렸을 때 이런 단어들을 접하고는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믿으면 정말 그리 될 것처럼. 하지만, 세상물정을 다 아는 나이가 되면서 궁금해지기 시작하더라. 그리고 질문하게 되더라. ‘진짜? 정말?’ 왜 내 안에선 이렇게 확인하고픈 마음이 요동쳤을까?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그 숱한 ‘부정의’한 일들 앞에서 자문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사필귀정이라는 말로 위안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는 거다.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비웃듯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중동지역과 우크라이나부터 저기 아프리카의 온갖 천인공노할 방법으로 무차별 살상이 버젓이 자행되는 나라들에서 사필귀정은 유효한가? 아프리카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억울한 일들은 또 어찌 해석할 것인가. 사필귀정이라면서요?
사필귀정을 천진난만하게 믿었던 그때로 돌아갔으면 싶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듯이 착하게 살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그렇게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 묵묵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준 이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고 존중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은 공정한 세상 말이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공허하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온갖 추악한 짓을 다해도 잘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절망을 이젠 그만했으면 싶다. 이것도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꿈인 것일까? 오늘 괜히 사필귀정을 했나보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잖아….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