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차_요산요수樂山樂水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산과 물을 좋아함’이다. 아주 심플하다. 이 말은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문장에서 유래했다. 예전에 한자 좀 아는 사람이라면, ‘지자(知者)는 요수(樂水)요, 인자(仁者)는 요산(樂山)이라’ 이 정도는 한 번쯤 읊어봤을 게다. 그만큼 유명하다는 얘기다. 좀 길지만, 이 문장은 이렇게 댓구로 같이 쓰는 게 보통이다. 

대학교 때, <논어 강독> 수업에서 저 문장이 나오는 ‘옹야(雍也)’편을 강독한 날, 나는 ‘바다냐, 산이냐?’를 자문해봤더랬다. 히히. 난 1초도 고민 안하고 ‘산’을 외쳤었지. 그때는 산을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 훨훨 날아다녔으니까.

그런 때가 있었는데… 정말 ‘아~옛날이여!’다. 산에 오른 지가 언제였나 싶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한자의 구성은 요렇다.

좋아할 요(樂), 뫼 산(山), 좋아할 요(樂), 물 수(水)

‘요수(樂水)’는 ‘물을 좋아함’이요, ‘요산(樂山)’은 ‘산을 좋아함’이다. 여기서는 ‘요(樂)’ 이 한자만 설명하면 되겠네. 간단하군. ‘요(樂)’는 독음이 세 개나 된다. ‘음악’이라는 뜻일 때는 ‘악’, ‘즐겁다’는 의미일 때는 ‘락’이며, ‘좋아하다’로 해석될 때는 ‘요’다. 그리하야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이렷다. 그럼, 원문은 어떻게 되는데?

子曰 知者樂水,仁者樂山(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공자 왈, 아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知者動,仁者靜;知者樂,仁者壽(지자동, 인자정 ; 지자락, 인자수)。아는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아는 사람은 즐거워할 줄 알고, 어진 사람은 오래간다. 

‘지자(知者)’와 ‘인자(仁者)’는 문자 그대로 ‘아는 자’와 ‘어진 자’렷다.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는 ‘지자요수(知者樂水)’에 대해 이렇게 주석을 달았더라. ‘지자(知者)’는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흐르고 정체하는 바가 없어 물과 비슷해서 물을 좋아한다고. 그럼, ‘인자(仁者)’는 어찌 풀이했을까? 원칙을 지키듯 제 자리에 머물러 진중하고 옮기지 않아서 산과 비슷함이 있으므로 산을 좋아한단다.

그 다음 구절에 대해서도 주희의 풀이를 보면, 지자(知者)는 ‘동(動)하여 맺히지 않으므로 즐거워(樂)하고(知者動, 知者樂)’, ‘고요히 머물러(靜) 일정함이 있음으로 오래 가는(壽) 것(仁者靜, 仁者壽)’이라 했다. 오늘은 한자가 쉬우니 해석만 따라오면 별 어려움은 없을 듯 한데… 맞나? 음… 맞다!

나는 늘 ‘산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나 역시도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큰 산으로 살고 싶었다. 내게 산이 되는 길은 ‘듣는’ 거였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 그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닫던 순간이 있었으므로. 그저 내 말 하는 게 귀찮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란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 수 있다잖은가.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아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 듯이,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게도 만든다. 

사람들이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은 사실 별 게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어느 날은 어스름한 여명이 너무 좋아서, 어떤 날 저녁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리고 누군가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산처럼 늘 그 자리에서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인문학의 감수성을 강조하던 철학자가 그랬다. 우리가 들어주기만 해도 수많은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추상같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산을 오를 때면 난 늘 홀로 가장 앞서 걷곤 했다. 그때만큼은 산과 오롯이 독대하고 싶었나 보다. 다산 정약용의 풀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고 먼저 나로부터 베풀어나가는, 그렇게 후한 덕으로 만물에 혜택을 주는’ 그런 ‘고요함(靜)’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요산요수(樂山樂水)’, 이게 뭐라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8 thoughts on “45일차_요산요수樂山樂水”

  1. 요산요수.. 어감이 또 제 귀에는 산과 바다로 들리지않고 한 상 잘 차려진 기생집의 멋드러진 가을 술상이 떠오르는지… 이 어감에 대한 선입견이 어떻게 할려고 이러는지.. 알수가없네요.. .. 전 바다가 보이는 산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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