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차_상전벽해桑田碧海

정말 눈부신 날이었다. 가을햇살이 부서지던 호수는 반짝반짝 잔물결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이었다. 그 찬란한 윤슬을 눈에 담으며 친구랑 걸어본 호수공원의 산책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으리. 

그렇게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환경 북콘서트 인문학 강의’를 마치고 우리는 구파발역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다. 차창 밖으로 ‘구파발’ 표지가 눈에 들어왔을 때, 조수석에 앉아있던 친구가 대뜸 그런다. 예전의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구파발은 정말 시골이었는데 이렇게 변했노라고. 그리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그 감상 후기를 공유해주는 것이었다. 구파발역에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자마자 친구가 보내준 링크 클릭! 그 글속에서 만난 사자성어, 상전벽해(桑田碧海). 음…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어.

뽕나무 상(桑), 밭 전(田), 푸를 벽(碧), 바다 해(海)

위의 한자 풀이에서 보듯이 ‘상전(桑田)’은 ‘뽕나무 밭’이요, ‘벽해(碧海)’는 ‘푸른 바다’이다. 그러니까 그 문자대로만 보자면 ‘뽕나무밭, 푸른 바다’인 거다. 이 사자성어의 사전적 정의를 여기에 옮겨보면 이렇다.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성어의 출전이 어딘가 보니, 진(晋)나라의 갈홍(葛洪)이 쓴 <신선전(神仙传)>의 ‘마고(麻姑)’편에 나오는 말이렷다. 

“麻姑自說云:‘接待以来,已見東海三爲桑田(마고자설운: 접대이래, 이견동해삼위상전)。’ 마고(麻姑)가 스스로 말하여 이르기를, ‘신선님을 모신 이래로 이미 동해가 세 번이나 뽕나무밭이 되는 것을 보았나이다.

선녀 마고(麻姑)와 신선 왕방평(王方平)의 대화에서 유래되었다나. 이 외에도 신선들이 서로 나이자랑 하는 장면의 버전도 있다던데~. 암튼, 맥락을 대충 훑어보니 이러쿵저러쿵 차~암 말 많네 거참. 뭐 신선들이 사는 동쪽 봉래산에 가보니 바다가 얕아져 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둥, 다시 육지로 바뀌겠냐는 둥 하면서 말이다. 그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요약해보니 결국 바다가 되었다 육지가 되었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 모양이라. 그러니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나야했겠나.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뽕나무밭이 되려면 좀 과장해서(?) 수 억만년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만약 가능하다면 말이다. 결국 상전벽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이지 싶다. 그런 세월의 결과물은 몰라볼 수밖에 없을 터. 

현재는 그래서 이 성어가 몰라보게 변화된 모습을 가리켜 사용되기도 하고, 거기에는 어쩔 수없이 인생무상의 색채가 스며있을 테다. 정리하자면, 결국 그 시간만큼이나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변했음’을 의미하는 메타포라 하겠다. 거기서 더 확장되어 ‘세상일이 덧없음’을 의미하기도 할 테고. 

오랜만에 일산에 다녀오면서 시간의 흐름을 새삼 체감했던 하루였다. 내 기억에도 화려한 도시와는 거리가 먼 인적 드문 동네 느낌이었던 구파발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내 눈에 훅 들어왔으니. 이런 상황에 ‘상전벽해’를 안 쓰면 언제 쓰겠나. 이렇게 세상이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찾기 힘들 정도로 변했으니, 그럼 나는??

상전벽해나 다름없던 구파발의 변화된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무심히 들여다본다. 내 마음속 외침이 들리는 것도 같다. 

‘아, 세월이여! 울고 싶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덧없음에 한숨 짓다가도 이내 미소를 되찾게 되는 이유? 햇빛 쏟아지던 가을날 오후의 동화 같던 산책이 선물해준 여운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음이라. 나의 강연 길에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준 친구 부부에게 감사한 마음이 나를 포근히 감싸고 있음이라. 지금까지도 이렇게 ‘상전벽해’라는 성어에 오래도록 머물며 놓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는지. 

6 thoughts on “30일차_상전벽해桑田碧海”

    • 그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샘은 분명 그리 사시고 계시고 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사실 거예요. 저도 따라가도록 노력하겠나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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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날의 느낌이 이렇게 다시 살아나는군~ 상전벽해가 지오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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