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차_타생지연他生之緣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우리 인생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바로 타생지연(他生之緣)’이다. 난 왠지 모르게 이 단어가 주는 어감이 참 좋더라. 

他生之緣: 다를 타(他), 날 생(生), 어조사 지(之), 인연 연(緣)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80억이 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과 옷깃을 스친다는 것!! 이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확률인 거다. 그러니 그 인연이야 말로 귀하고 귀한 사건일 테다. ‘타생지연’은 문자 그대로 ‘다른 생의 인연’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유래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마주침은 그게 아무리 찰라라 할지라도 해도, 그 모든 것이 전생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미한단다.

타생지연(他生之緣)에서 ‘타생(他生)’이라 함은 ‘이전의 생애’를 의미하는 것이요, ‘인연(緣)’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와 사건이 연관되어 있다고 믿으며, 그 연결고리를 가리켜 ‘인연’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인연’이라는 것이 단지 지금 생(生)에서의 관계만이 아닌 과거의 생(生)으로부터 이어진 거라니… 

이렇게 불교적 세계관에서 보면, ‘타생지연’이라는 말 속에는 이 생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모든 만남과 사건은 우연이 아닌,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거다. 이 얼마나 소중한가 말이다.

인연

누구든 내 가장 소중한 어머니처럼, 오래도록 같이 살아온 편안한 이웃처럼, 허물없이 얘기하고 푸근하게 웃으며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인연들. 정말 인연이란 모를 일이다. 언제 어디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인 것 같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결과인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의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삶을 미필적 고의로 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매 순간 우연이라는 옷을 입고 찾아오는 인연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만남으로 기억될 때, 좀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삶’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며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그렇다. 삶이란 바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인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는 아마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내 주위의 고마운 인연들 하나하나가 떠오르는 이 순간. 

오랜만에 독일에 사는 아는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언니, 잘 지내?” 이 다정한 한 마디가 머리를 스쳐 내 가슴에 콕 박힌다. 한동안 사는 데 바빠 잊고 지냈던 인연들이 아직도 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수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함께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 그 여정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인연들과 여태껏 머무르고 있을까? 

누군가로부터 잊히는 것만큼 서글픈 일도 없을 텐데. 그 쓸쓸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 멀리서 걸려온 이 전화 한 통으로도 이렇게 난 행복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살아가면서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면… 문득 나를 떠올리면서 빙긋한 미소와 함께 ‘1초’ 그리움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편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것. 나와 맺은 그 어떤 인연에도 감사하며 언제든지 따스한 손길 건넬 수 있는 그 ‘마음’으로 흘러가고 싶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