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자, 봄비네처럼~

오밤중 카톡, 독일에서 날아온 링크를 클릭하니 한국의 어느 두메산골에서 살아가는 네 가족의 삶이 내 앞에 펼쳐졌다. ‘봄비네 집을 짓다’, 음… 봄비라는 아이가 나오나보네? 그렇게 시작된 봄비네 일상 엿보기, 모니터 너머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보며 므흣한 시간이 흐른다.

우리네 삶은 때로는 흑백사진 속 겨울나무처럼, 때로는 총천연색의 가을산 같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또 봄날의 햇살로 따스하게 스며들다가도 여지없이 뜨거운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름날, 가열차게 내리쬐는 태양처럼 말이다. 우리는 울퉁불퉁한 길을 힘겹게 걸어가기도 하지만, 쭉 뻗은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게 되는 날도 온다. 잿빛 속으로 사그라드나 싶은 순간에 희미한 빛이 다시 빼꼼 살아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인생은 그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이다. 

봄비네 가족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내게 왔길래…? 그 특별할 것 없는 시골살이가 뭐 그리 좋다고 난 혼자 피식거리며 그렇게 행복했을까. 그 이름만큼이나 싱그러운 단비가 되어 파릇파릇하게 피워내던 그들의 소박한 일상엔 분명 가슴 아릿한 감동이 있었다. 그렇게 자기만의 속도로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달까.

아내와 두 딸 사이에서 세상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중년의 남자가 있다. 조금은 오버스럽더라도 좋은 감정은 표현하고야 마는 그다. 이 대목에서 그는 상찬 받아 마땅하리라.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아무튼, 그가 매순간 마음껏 표현하는 넉넉한 사랑으로 인해 그들을 보고 있는 나까지도 행복해졌으니 그거면 됐다. 그리고 이 멋진 로맨티스트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조용하게 내면이 단단한 그녀, 아이들 교육에 대한 생각에서도, 삶에 대한 태도에서도 그이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더라. 참 부러운 삶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혼자만의 자유가 더 좋을 나이임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아는 봄날의 꽃비 같은 청춘이 있다. 바로 이 집의 큰딸, 스무 살의 봄비다. 이 친구는 꿈이 너무 많아 꿈이 없다고 말한다. ‘VISION BOARD(비전 보드)’라는 타이틀을 달고 벽에 붙어 있던 하얀 도화지 위에 빼곡하게 써내려간 봄비의 버킷리스트. 그속에서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닐 미래의 봄비가 보였다. 그리고 봄비의 꿈 아닌 꿈을 나도 응원하고 싶어졌다. 아, 봄비가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자 감격해서 춤추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다던 봄비, 그 다락방 널따란 통창으로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끼며 쓰여지게 될 봄비의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자, 이쯤해서 등장해야 할 또 하나의 캐릭터, 봄비의 동생이자 이집의 귀염둥이 막내딸 머루다. 본명을 두고도 ‘머루’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은 이 친구는 이담에 커서 농부가 될 거란다. 자기가 키운 식량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란다. 이렇게 어린 친구의 이토록 꽉 찬 생각이라니. 매일 농부 아빠를 따라 버섯을 따고 파에 물을 주고… 농사가 체험학습이고 일상이 되는 머루의 꿈은 누가 봐도 따놓은 당상이렷다.  

2시간 속에 응축된 이 네 가족이 같이 만들어가는 느리고 담백한 일상은 머루의 생각만큼이나 멋지고 사랑스러웠다. 이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생각해본다. 내가 그리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를.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어디멘고. 

아내가 꿈꾸던 병풍 같은 창문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네 가족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에게 고마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훈훈한 모습에 마치 내 일인양 기뻤다. 소풍 가듯 동산에 올라 계속 지어지고 있는 자기네 집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는 봄비네, 이보다 더 행복한 웃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막내딸 머루의 행복한 외침으로 갈무리된 마지막 장면 앞에서 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워드(Word) 화면을 켰다. 뭔지 모를 이 애틋한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뭐라도 끄적이고픈 마음에. 그렇게라도 그 아름다운 사람들의 풍경을 내 마음속에 간직해두고 싶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