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마실 나가면 꼭 만나는 얼굴이 있다. 어수선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사우나 빌딩 앞에서 늘 어슬렁대는 친구가 있다. 어느새 녀석은 내가 늘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가는 대상이 됐다. 밥 먹는 뒷모습만 보다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편안하게 잠든 녀석 옆에 한참을 않아있다만 오기도 한다.
어느 날 오후, 늘 그렇듯 녀석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날은 편안함만은 아닌 뭔가 다른 느낌 하나가 더 내게로 왔다. 나무벤치 위에 축 처져 있는 녀석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듣는지 마는지 관심 1도 없다. 들어주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그냥 말할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혼잣말에 지쳐 몸을 일으키니 미동도 없던 녀석이 고개를 든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손을 흔들며 그 자릴 뜨면서도 녀석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를 보는 녀석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슬픔을 봐버렸으므로.
며칠 후, 녀석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무작정 그곳으로 찾아갔다. 장작더미 뒤쪽 제집에서 잔다는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서다 여쭤봤다. “쟤 이름이 뭐예요?” “재석이.” “재석이요?” 참,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복도 많네, 녀석. ㅎㅎ 근데 사장님 성(姓)은 뭘까나? 뜬금없이 왜 그게 궁금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난 이제 녀석의 이름도 알게 된 거다.
그리고 며칠 후, 창가에 서서 비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집을 나섰다. 빗속을 뚫고 또다시 재석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녀석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재석이 어디 갔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친절하게 답변해주신다. 며칠 전 친구 재동이를 누군가 데려갔단다. 친구를 잃고 시름시름 앓는 재석이를 다른 길냥이 친구들이 있는 절에 데려다주셨다고(사장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ㅠㅠ).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 우산 밑으로 들이치는 빗물에 내가 젖는다. 매일 걷던 골목길이 이랬었구나. 새삼스럽긴. 문득 재석이의 슬픈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진작 이름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불러줬을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둘걸. 그 좋은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 들고 다니면서도 사진 찍는 데 인색한 내가 처음으로 미웠다. 유일하게 한 장 있는 게 녀석의 뒷모습(?)이라니.
감정이란 때론 참 불편하다. 누군가 그랬지.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라고. 그러니 괜찮다. 재석이가 외롭지 않게 친구들과 행복하면 됐다. 거기가 어디든. 그거면 됐다. 음… 허기진다. 밥 먹어야겠다.
그대는 잠시 다녀갔더이다.
잔잔히 일렁이던 설렘을 선물하더니
그게 다였더이다.
그대는 그렇게 잠시 스쳐갔더이다.
시린 내 마음이…
공허한 내 마음이…
가만히 바람에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