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의 토리노 데이트 4
지오: 음… 한 가지 부탁이 있소. 오늘 하루 우리가 동무하는 동안은 귀하를 ‘니오’라고 불러도 되겠소? 니체, 니체 하기 부담스러워 그러오. 귀하 이름이 우리에겐 그리 편한 이름도 아니고. 내 사는 곳에서 니체랑 동무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소. 또 굳이 이유 하나 덧붙이자면, 내 어릴 적 소꿉친구랑 놀 때 우리는 서로 둘만 아는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오. ‘금지, 은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오. 조금 유치해도 더 재밌어 보이지 않소?
니체: 더 재밌는 건 모르겠고, 뭐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오. 난 상관없으니. 내가 아이들 놀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근데 왜 ‘니오’인지 그 이유나 압시다. 전공은 못 속이나 보오. 난 늘 이름이든 뭐든 그 어원이 궁금한 사람이라…
지오: 참 별일이오. 귀하가 이리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니지 않소. 하하. 그리 말해주니 어쨌든 고맙소. 내 귀하의 전공이 문헌학인 건 익히 알고 있소. 그러니 그런 궁금증 충분히 이해하오. 내 이름 지오, 이것은 한자요. 귀하에겐 좀 낯설고 어렵겠지만 그냥 들으시오. ‘이를지(至)’에 ‘나오(吾)’를 써서 지오(至吾)요. ‘나에게 이르는’이라는 뭐 그런 뜻이 있소. 귀하는 잘 모르겠지만…
니체: 그대는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소. 다 이해했소. 지오라… 음… 그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아저씨’라는 뜻이오. 이 평범한 단어가 한자로는 그리 좋은 뜻이 되는구려. 멋있소.
지오: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예기치 않게 큰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소. 어느 날 문득 그 아팠던 시간들이 ‘나에게 오는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그래서 진짜 나를 찾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오’라 불러본 거요. 나를, 내가 말이오. 내 각별한 그 이름에 걸맞게 오늘은 귀하도 ‘니오’요. ‘니오지오’. 재미있지 않소? 내가 그리 정한 거요. ‘니오지오’. 발음하기도 좋으니 그리합시다.
니체: 그대는 재미를 참 좋아하나 보오. 그대가 재미있으면 됐소. 그게 발음이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나 그대가 하라니 나도 오늘은 ‘니오’요. 나 참… 내가 왜 자꾸 시키는 대로 하는지는 모르겠소만…
지오: 하하, 고맙소. 이건 비밀인데, 난 사실 아주 재미없는 사람이라오. 그런 줄 아시오. 그래도 오늘 우리 대화는 잘 될 것 같지 않소? 시작이 참 좋소.
니체: 그럽시다. 근데 우리 언제까지 ‘오오, 소소’ 해야 하는 거요?
지오: 그게 무슨 말이요? ‘오오, 소소’라니?
니체: 지금 우리 말끝마다 ‘오오, 소소’ 하고 있지 않소? 좀 이상해서 그러오. 그대가 그리 하니 그저 따라 하긴 했소만…
지오: 아하, 이 말투 말이오? 사실 나도 이상하오. 이건 그러니까 내가 감명받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오마주였소. 참, 그러고 보니 귀하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구료. 비록 ‘유진 초이(Eugene Choi)’라는 이름으로 현대에 다시 태어나긴 했지만 말이요. 그의 삶이 참 고귀하다 느껴지더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말투를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었소. 귀하도 고귀함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소? 그리고 난 귀하가 소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 거요?
니체: 내가 소를 좋아하오?
지오: 귀하가 그러지 않았소. 귀하의 저서를 읽을 수 있으려면 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오. 소에게서 배우라 하지 않았소.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법을 배우라고. 농담 아니오. 귀하가 말한 그 ‘되새김질’이라는 뜻의 ‘반추(反芻)’는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생각의 기술인 것 같소. 비록 그 소와 이 소는 많이 다르지만 말이오. 하하.
니체: 그거 참… 내 아무리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언어가 중요하다 했기로서니 이런 마구잡이식 언어유희는 너무 한 거 아니오?
지오: 지금 내 언어유희를 탓하는 거요? 귀하의 메모 ‘언어유희’ 편에서 발견한 그 ‘고르-곤졸라’보다 백 번 낫지 싶은데..
니체: 내가 아무렇게나 끄적였던 그 메모도 보았소? 그대는 나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고 있소. 암튼, 그대에게 졌소. 그 고귀한 사내가 누군지는 모르나 어쨌든 그런 이유라면 뭐… 그대는 오늘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려나 보오?
지오: 귀하를 따라 하는 것이오. 내 평생 그리 살아보질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어 그러오. 왠지 귀하는 이해해줄 것 같아서. 귀하가 그리 살라 하지 않았소? 정직하게 표면이 심연인 듯 그렇게 말이오.
니체: 그렇소. 아주 잘하고 있소. 하고 싶은 것들 눈치 안 보고 해 보는 것, 나는 좋소. 그러니 내가 양보하리다. 오오, 소소. 그리 해봅시다. 계속.
지오: 귀하답지 않게 오늘 참 너그럽소.
니체: 나를 너무 까칠한 인간으로만 보지 마시오. 내가 비록 망치를 들고 철학은 했지만 모든 이를 공격한 건 아니잖소. 소위 진리라는 것들과 그것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에게 그런 거지. 나도 알고 보면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오.
지오: 그래 보이오. 고맙다는 얘기를 하는 거요. 덕분에 언젠가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던 ‘고귀함’에 대한 오마주도 해보았소. 요즘, 귀하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말했던 ‘귀족 도덕과 노예 도덕’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노비로 태어났으나 고귀하게 살다 간 유진 초이(Eugene Choi)가 떠올라서 한 번 재미삼아 해본 거요. 참고로 유진 초이의 ‘Eugene’이라는 단어의 뜻은 ‘고귀하고 거룩한 자’라는 뜻이오. 의미심장하지 않소?
니체: 정말 그렇구려. 고귀하고 거룩한 자라…
지오: 이제 언어로 농담하는 거는 그만 하겠소. 이만하면 충분하오. 지금부터는 우리 편하게 대화합시다. 소를 더 이상 찾지 않고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으니.
지오 자신에게도 생경했던 역사가 묻어있는 말투에 기대어 니체와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히고자 했던 도전은 일단 목적을 달성한 듯했다. 그녀는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녀가 상상 속에서 그려본 니체가 토리노에 살았던 이 시기의 이미지는 그녀로서도 상대하기가 어려울 그런 쓸쓸함을 깊이 끌어안은 과묵함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루 살로메가 그랬듯 지오도 세상과 거리를 둔 듯한 그에게서 그 안에 숨겨진 본모습을 찾고 싶었다. 평생 근시로 고생했던 그이지만 위축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세상을 감시하는 듯한 빤히 들여다보는 버릇도 없었다. 바깥세상보다는 자기 내면을 향하는 것 같은 그의 눈빛이야말로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지켜내는 보루 같았다. 이 잠깐의 대화에서도 언뜻언뜻 스치던 그 무심한 듯 아득한 눈빛에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뭔지 모를 익숙함이 그녀로 하여금 당돌함을 가장해 그에게 다가갈 수 있게 했는지도. 음…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그녀 앞에서 낯선 이방인을 마치 오랜 친구인 듯 스스럼없이 대하는 니체라는 이 사내… 그 솔직 담백함이 맘에 들었다. 그는 과연 자신이 말한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말이다. 정직하게 표면이 심연인 듯 그렇게.
홀로 긴장했던 내밀한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그녀, 기꺼이 하루 친구가 돼주겠다는 니오를 불러본다. 오늘 그녀에게 그는 저 먼 곳에 거처하는 철학자 니체가 아닌 내 친구 니오다.
지오: 니오, 이제부터 정말 이렇게 니오라 부를 겁니다. 철학자님~
니오: 그리 불러주니 좋군요. 새 이름이 생겨서도 좋고… 지오도 아는지 모르겠으나 실은 내가 원래 이름이 많아요. 누군가는 그럽디다. 니체는 ‘우산을 잃어버리듯’ 쉽게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하나의 정체성을 쉽게 내던져버렸다고 말이오. 하하.
지오: 그 말에 동의하나요? 니오의 책을 보면 끝부분에 ‘디오니소스’라고도 했다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라고도 했다가 정말 여러 이름으로 서명한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내 나름대로는 니오가 주장하던 ‘불멸하기 위해 여러 번 죽어야 한다’는 그 말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니오: 그리 얘기해도 되겠네요. 개인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만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을 테니.
지오: 방금 그 말은 또 ‘고정된 자아는 없다’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그러고 보면 니오에게 이름은 하나의 가면일 수도 있겠네요. 정말 그런가요? 니오가 심오한 인간은 가면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참 신기했어요. 이 가면에 대한 생각조차도 니오는 보통사람들과 달랐거든요.
니오: 사람들은 가면을 얘기할 때 늘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에 괴로워하죠.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진짜 얼굴은 없으니 말이오. 그저 그 가면 뒤에는 또 다른 가면이 있을 뿐이오. 그러니 우리는 그냥 놀이처럼 그렇게 가면을 쓰면 되는 것이오.
지오: ‘놀이처럼’ 요? 니오는 과연 책 속에서 만났던 그 니체처럼 모든 게 참 가볍네요. 니오 앞에서는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혈안이 된 무거운 중력의 악령’도 꼼짝 못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삶이 어찌 무거울 수 있겠어요. 그런 면에서 참 부럽습니다. 지금 니오의 명랑한 모습에서 ‘그 어떤 이름으로도 나를 가두지 못하리라’ 자신하는 자유정신이 느껴지거든요.
니체: 맞아요. 삶은 가벼워야 해요. 비눗방울과 나비, 이와 유사한 인간들이야말로 행복을 가장 잘 아는 것 같거든요. 이 가볍고 어리석고 잘 움직이는 귀여운 것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동되어 눈물이 나고 시를 읊게 된다니까.
지오: 갑자기 나도 나비가 되어보고 싶네요. 하하. 비록 나비는 될 수 없지만 오늘은 나와 함께 또 하나의 가면을 쓰는 겁니다. 오늘의 가면은 짜자잔~~ 그냥 지오 친구, 니오!
니오: 호기심 많은 지오여! 어서 그 가면을 내게 주시오. 하하. 니오가 자꾸 재미를 얘기하더니 전염됐나 봅니다. 나도 재밌어지려는 걸 보니. 이런 기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괜히 설레고 기대가 되네요. 그거 아오? 게다가 우리는 지금 벌써 ‘위대한 정오’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 어느새 우리의 시간은 니체가 그토록 사랑하는 ‘위대한 정오’로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니체가 그랬다. 먹고사는 일에만 몰두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와중에 어느 날 갑자기 자아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는 계기가 ‘정오의 종소리’라고. 그 종소리를 듣고 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는 그 비유는 정말 탁월했다. 요즘 그녀에게 울려 퍼진 정오의 종소리는 <도덕의 계보학>이었다. 그녀를 자각시킨 이 책 덕분에 외부로 향해 있던 시선을 오롯이 그녀 안으로 돌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던 거다. 그 무시무시하게 고마운 책 <도덕의 계보학>의 주인이 바로 그녀 앞에 있다. 그 책이 주는 무게감과는 상반되는 해맑게 반짝이던 눈동자를 창밖 저 너머 정오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알베르토 광장 쪽으로 고정한 채…
니오: 그리 얘기해도 되겠네요. 개인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만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을 테니.
니오의 이말이 너무 위로가 됩니다. 하루지나면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반나절이 지나도 또 다른 나를 만나서, 당황스러운적이 많은데, 지오의 친구 니오님의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될수가요..
니오: 그리 얘기해도 되겠네요. 개인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만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을 테니.
니오의 이말이 너무 위로가 됩니다. 하루지나면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반나절이 지나도 또 다른 나를 만나서, 당황스러운적이 많은데, 지오의 친구 니오님의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될수가요..
지오가 니오를 만나러 그 먼 지구 몇 바퀴를 돌아돌아 찾아간 이유를 아시겠지요? ㅎㅎ
저도 샘과 같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