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안에게 말 걸기

아침에 눈을 뜨니 강렬한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새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온 침대를 뒤덮고 있는 그 쨍한 햇볕에 지레 겁먹은 것일까. 내 핏줄 속에 거친 소금기가 뿌려진 듯 뭔지 모를 찜찜함으로 그렇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내 몸에 찾아왔다. 순간, 좀 더 정상적인 사람들의 진지함에 냉담한 채로 그냥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나 자신의 게으름과 그로 인한 자기혐오가 뒤섞인 그 마음인 채로… 그냥 그렇게. 오늘만큼은 그래도 된다고 누군가 말해줬으면 싶었다. 아무도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이 없다. 그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악마 같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만 있을 뿐. 

벌떡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멍하니 다시 그 자리에 앉는다. 도대체 지금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는 이 불안감은 뭐란 말이냐… 비가 오는 아침에도 태양 가득한 오후에도 아무런 불평 없이 의연한 모습이고 싶었는데… 반복적인 일상의 지루함속에서도 내가 머무는 이곳을 떠나 더 나은 저곳으로 가버리고 싶은 즉물적 욕망에 지고 싶지 않았는데… 역시 내 인내의 한계는 여기까지였나 보다. 한데 잠을 자면서도, 질척한 흙속에 다리를 묶인 채로도, 하늘 향한 아주 작은 자유만이 허용된 채로도 묵묵히 만족할 따름인 나무의 가없는 인내가 그립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시쳇말로 ‘경단녀’라는 말이 있다. ‘경력이 단절된 여자’라는 뜻의 줄임말이란다. 어쩌면 나는 지금 학계에서 이 ‘경단녀’의 부류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공부하는 게 참 좋았고 논문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보람으로 다가오던 시절이 있었다. 논문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고 언제까지나 그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생은 나를 그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 삶에서 떠나 있었고 완전히 다른 나의 모습으로 살았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로 생의 한가운데서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예전의 내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강단에 섰고 학생들과의 교감에 감사하게 되는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새롭게 열정을 찾았고 괜찮게 회복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원했던 삶의 모습으로 멋지게 살고 있다고 믿었고 가끔은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다시 잡은 논문은 내게 안정감은커녕 이전보다 훨씬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전혀 즐겁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쉬었으니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내 안의 불안은 잦아들지 않았다. 늘 갈망하던 것을 정작 다시 시작하고 보니 이제는 그때처럼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인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도 모른다. 지난한 시간의 거센 물살에 쓸려 내려온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다. 냉혹하게 변해버린 현실을 맞닥뜨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재의 내가 있을 뿐이다. 

참 많이 아팠던 시간들 속에서 내가 부여잡고 있었던 한 가닥 희망이랄까… 심연 속으로 스러질 것만 같던 나를 잡아주던 무형의 손길이 있었다. 어쩌면 내 안의 저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으로 나를 이끌던 그 손길이 있었기에 나는 내 삶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나먼 낯선 땅에서 깊은 슬픔에 허우적거릴 때에도 내가 돌아갈 곳이 있고 그곳에서 재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이었는지도… 

하지만 나는 요 며칠 그 실체와 다시 마주했고 알아버린 것이다. 내가 희망을 걸었던 나의 재능에 제동이 걸려버린 것을 말이다. 그 빛나던 예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오늘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두려운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 미래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의외로 참 멋지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아 허방을 헤매던 그 와중에도 값진 가르침을 주니 말이다. 

그건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는 거다. 이 짧은 글을 쓰는 지금, 그 허공에 부유하던 마음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낀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면서 이 글 모임의 첫 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나는 탈출구가 필요했던 거다. 이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줄 그 무언가가 절실했던 거다. 이제 더는 나를 파괴하는 무기력에 지고 싶지 않았던 거다. 몇 개월 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한 번씩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마는 무기력이 나를 지배하도록 그냥 내버려 뒀을 텐데… 오늘 나는 글쓰기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일지언정 내 방식으로 용기를 내고 있었다. 문득, 내가 어느새 두려움에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지 못하고 피한다면 내 삶은 계속 슬픔인 채로 또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무능과 그로 인한 불안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거면 됐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그와 마주 보고 말 걸고 잘 타협하기만 하면 된다. 불안이 나를 이기도록 놔두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고 내 불안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불안을 잘 타이르고 내게서 잠시 떠나보낼 수만 있다면 그 빈자리는 나 자신을 믿는 마음의 힘으로 다시 채워질 테니까. 그거면 됐다. 그거면 오늘 내가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리라.   

2 thoughts on “내 안의 불안에게 말 걸기”

  1. 내안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 안에 무엇하고 늘 분쟁을 하고있나봅니다. 전 요즘 분쟁을 힘들어하지않고 이제 친구로 만들어볼생각입니다. 왜 나한테 찾아왔니? 내 몸이 힘드니? 햇빛양이 부족했나? 피곤한가? 물을 덜 마셧는지? 깊은 잠을 자지못했나? 이런식으로 전 요즘 저에게오는 불안들에게 하나씩 물어봅니다. 가끔은 답이 있기도 해요. 해야되는일을 하지않아서… 불안이 올때 , 이제는 저는 마음의 상을 차려보려고합니다. 마음의 상에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올려놓을때 불안이 어떤걸 집는질 보면 되지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하면 나에게 들어오기전에 내가 먼저 불안이 집어들었던것들을 준비해놓으면 어떻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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